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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똥나무를 보다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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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min | 작성일 | 2019-11-14 | ||
조회수 | 3152 | 추천수 | 7 | ||
출근 길, 손이 시리다.
건널목에서 푸른 신호를 기다리다 바삐 사는 게 너무 각박하다는 생각이 들어 한 호흡 늦추어 옆을 보니 키 작은 가로수가 가득하다.
쥐똥 닮은 까만 열매를 달고 한 해의 갈무리를 하는 쥐똥나무.
흰 꽃 심지 돋워 향기의 불을 켤 때도 스치기만 했고 꽃 진 자리에 맺은 파란 열매의 눈동자도 외면하더니 까맣게 익은 염주 알로 열반을 준비하는 너를 만나니, 지금껏 나를 기다려준 네가 고맙고 감격하여 가슴의 온수를 끌어올려 눈시울에 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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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백일의 금연전투는 어떠했던가. 나와 동조할 수 없는 인간과의 어울림을 피해 홀로 마시는 독작(獨酌), 홀로 말하는 독백(獨白), 홀로 걷는 독행(獨行). 참으로 외롭고 처절한 투쟁이었지, 내 안에 있는 적과의 사투. 허파에 불을 지르고 뇌에 톱질을 하는 내란의 마귀.
아마 늦봄이었을 거야. 햇살 곱고 바람 맑아 푸르러지는 때. 외부는 극락이었지만 내부는 환란의 소용돌이였지. 전투는 홀로 치르는 것이기에 아파트의 외진 벤치에 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금연경(禁煙經)을 외고 있는데..... 참 신기하기도 해라, 땅속에서 금부처가 피어오르는 게야.
나는 멍하니 한참을 바라보았어. 벤치의 그늘 아래에서 한 뼘의 키로 동전만한 황금 얼굴에 천의 미소를 띠고 내게 발랄하고 천진한 노란빛 말을 건네는 거야.
우리는 금방 친해졌어. 외롭고 봄이고 살아남아야했거든. 더구나 우리는 눈빛으로 대화를 하는 능력을 가졌고.
그날 이후로 나는 들풀과 대화하는 능력을 갖게 되었지. 가끔 그 아이들을 만나 오래 눈의 대화를 하다보면 많은 시름이 풀리고 세상은 다시 아름다워지지. 그들은 자연이며 신이며 나의 분신이기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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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고 외롭고, 불안정하고 가끔 분노가 끓어오르는.... 그대여. 인간과의 대화가 힘들다면 외진 곳의 풀꽃을 만나보길 권해. 이 초겨울에 무슨 꽃이 있겠냐고 지레 포기할 필요는 없어. 국화종류는 오히려 더욱 곱고, 철 지난 꽃도 드물게 있지. 꽃이 없으면 어때, 꽃 진 자리의 열매에서 꽃을 추억하거나 퍼렇거나 시들어가는 이파리와 아픈 대화를 나누어도 좋아. 문득 내게 다가오는 사물이 무척 많아, 외면하지 않으면 모두가 친구며 도반(道伴)이야.
우리는 지금 금단의 도(道)를 닦는 중이며 함께 하는 짝(반伴)이 필요하지. 도반(道伴), 금길의 우리는 모두 도반이야, 심지어 풀과 구름과 바람까지도.
모두 이루시길, 두 손 모아보는 햇살 좋은 아침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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